– 한국 천주교의 요람, 역사와 현대 성전 건축 이야기
강원도 횡성의 풍수원과 원주 용소막을 거쳐, 오늘 티파니가 찾아갈 순례의 길목은 충북 제천의 깊은 산자락에 아늑히 안긴 배론성지입니다.

‘배론’이라는 이름은 마을이 자리한 골짜기가 배 밑바닥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산과 계곡에 둘러싸인 이곳은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들어온 신자들의 삶터였습니다. 교우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생계를 이어 가는 가운데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차가운 토굴에 남은 절박한 기록부터 미래의 사제를 길러 내던 배움의 자리, 오늘의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배 모양의 기념성당까지. 배론성지는 서로 다른 시대의 믿음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배 밑바닥을 닮은 골짜기’라는 이름을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몸을 숨겨야 했던 이들에게 이 산골은 얼마나 간절한 안식처였을까요. 오늘 제게 평화롭게 느껴지는 풍경 안에 누군가의 두려운 하루가 겹쳐 있었다고 생각하니, 성지를 향하는 마음도 조금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이번 제천 배론성지 순례에서는 황사영 백서 토굴,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소, 성요셉 신학당, 그리고 현대 성전 건축의 의미를 차례로 살펴보려 합니다.
지난 글 읽기: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 이야기 — 우리말 성경에 일생을 바친 사제
황사영 백서 토굴, 박해 속에서 쓴 절박한 기록

배론성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황사영 알렉시오입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이곳 토굴에 숨어 지내며,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낼 편지를 비단에 써 내려갔습니다. 비단에 쓴 글이라는 뜻의 ‘황사영 백서’입니다.
1만 3천여 자의 작은 글씨에는 박해의 참상과 신자들의 죽음, 무너진 교회를 다시 일으키려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는 전달되지 못한 채 발각되었고, 황사영은 체포되어 그해 처형되었습니다.
백서에는 외국의 군사 개입을 요청하는 내용도 있어 조선 조정에 역모의 증거로 받아들여졌으며, 후대에도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신앙을 지키려던 절박함과 그 선택이 남긴 문제를 함께 돌아보게 하는 기록입니다. 현재 황사영은 한국 천주교회가 시복을 추진하는 ‘하느님의 종’ 가운데 한 분으로 소개됩니다.
토굴 앞에 서니, 바깥의 인기척에도 마음을 졸였을 그 시간이 떠오릅니다. 작은 비단 위에 한 글자씩 마음을 눌러 담았을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오늘의 저는 자유롭게 성당 문을 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익숙하게 누려 온 그 평화가 얼마나 귀한 은총인지 조용히 되새겨 봅니다.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소와 땀의 순교

배론성지가 품은 또 하나의 소중한 자리는 한국의 두 번째 사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입니다. 최양업 신부는 마카오 유학을 거쳐 1849년 사제로 서품되었고, 귀국한 뒤에는 산간벽지의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성사를 집전하고 신앙을 돌보았습니다.
박해로 부모를 잃은 아픔을 지닌 채, 그는 열한 해가 넘도록 먼 길을 걸어 흩어진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그를 ‘땀의 순교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처럼 자신의 몸과 시간을 내어 준 헌신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최양업 신부는 1861년 6월 15일 선종했으며 배론에 묻혔습니다. 2016년에는 영웅적인 성덕을 인정받아 가경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언덕 위 묘소 앞에 무릎을 꿇으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는 일이 얼마나 큰 사랑이 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분이 걸었던 길의 길이보다, 그 길 끝에서 만났을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마음에 떠오릅니다.
산길 너머에서 신부님을 기다렸을 이들에게 그 발걸음은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을까요. 저는 가까운 이의 안부조차 바쁘다는 이유로 뒤로 미루곤 합니다. 누군가를 찾아가는 작은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감사함과 함께 제 일상을 돌아보는 마음이 듭니다.
성요셉 신학당,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자리
1855년 배론에는 성요셉 신학당이 세워졌습니다. 조선인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신학교로, 장주기 요셉이 내어놓은 집에서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스트르 신부가 설립을 이끌었고, 이후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 등이 신학생 교육을 맡았습니다. 라틴어와 철학, 신학을 배우던 이 작은 학교는 한국 교회의 사제 양성과 서양 학문 수용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1866년 병인박해로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 성지에서 만나는 신학당 건물은 당시의 배움터를 기억하도록 복원한 공간입니다.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곳에 모여 공부하던 이들의 뜻을 돌아보며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숨을 곳이 필요했던 골짜기에 배움의 자리가 생겨났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습니다.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날들 속에서도 책을 펴고 다음 세대를 준비했던 사람들. 그들의 공부 또한 조용하고 단단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작은 신학당을 생각하며, 저는 두려울 때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문부터 닫아 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이들은 그 문을 조금씩 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어려움 속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누군가를 길러 내는 일, 그 자체가 희망을 놓지 않는 방법이었음을 느낍니다.
배 모양의 기념성당, 구원의 방주를 떠올리다

역사적 유적을 지나 성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현대에 지어진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성당을 만나게 됩니다. 1999년 최양업 신부 사제 서품 150주년을 기념하고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건립한 성당입니다.
이 기념성당을 이해하는 열쇠는 ‘배’라는 형상에 있습니다. 배 밑바닥을 닮았다는 배론의 지명을 건축으로 풀어내면서, 세상의 풍랑 속에서도 사람들을 품고 나아가는 노아의 방주와 교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최양업 신부가 조선으로 들어오기 위해 배를 탔던 여정도 그 상징과 연결됩니다.
배를 닮은 성전 앞에 서면, 골짜기에 붙은 이름이 하나의 기도 공간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감추어져 있어야 했던 신앙의 기억과 많은 이가 함께 모이는 오늘의 공간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주합니다.
기념성당은 대성당과 소성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020년 『경향잡지』의 현장 소개는 대성당을 좌석 978석, 수용 인원 약 2,000명, 소성당을 약 280석으로 설명합니다. 좌석 수와 전체 수용 규모는 구분해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이 숫자보다 먼저 살펴보고 싶은 것은 성전이 사람을 맞이하는 방식입니다. 오랜 길을 걸어 이곳에 온 이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자리. 저는 그 공간에서 평생 교우들을 찾아 걸었던 최양업 신부의 따뜻한 품을 떠올립니다.
‘방주’라는 말을 떠올리면, 제 마음에는 거대한 배보다 먼저 지친 사람이 잠시 기대어 쉴 자리가 그려집니다. 사는 일이 버거워 기도할 말조차 찾지 못하는 날에도, 조용히 앉아 있을 자리는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서둘러 답을 건네기보다 곁을 내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토굴에서 성전까지, 배론성지를 걷는 순서
배론성지는 한 건물만 보고 돌아오기보다, 서로 연결된 장소들을 천천히 걸을 때 더 깊게 다가옵니다. 정해진 의무 동선은 아니지만, 처음 방문한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따라가 보셔도 좋겠습니다.
- 황사영 백서 토굴과 관련 유적: 박해의 역사와 신앙의 자유를 생각하며 잠시 침묵합니다.
- 성요셉 신학당 복원 공간: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품었던 배움과 사제 양성의 뜻을 돌아봅니다.
-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소: 기도로 이어진 사목의 길과 헌신을 묵상합니다.
-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배 모양 건축의 상징을 살피고, 미사나 기도에 참여합니다.
실제 이동 순서는 경사와 날씨, 미사 시간, 개인의 보행 여건에 맞춰 조정해 주세요. 성전 내부 관람과 성체조배 공간 이용은 현장 개방 안내를 확인하고, 다른 순례자들의 기도 시간을 배려하면 좋겠습니다.
티파니의 묵상: 누군가를 품는 작은 방주가 되기를
배론성지의 토굴을 둘러본 뒤, 배 모양을 형상화한 기념성당 앞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1801년 황사영이 붓을 들었던 비좁은 토굴과, 두 세기가 지난 오늘날 많은 순례자가 함께 미사를 바치는 성전. 시공간을 넘어 연결된 이 두 공간은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주님, 선조들은 차갑고 어두운 토굴 속에서도 마음속에 하늘나라의 성전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성전에서 기도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는 오늘, 제 삶도 누군가를 포근히 안아 주는 작은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소서.
성지 경내를 감싸 안은 단풍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칩니다. 박해의 슬픔을 기억하면서도 오늘의 은총을 살아가는 배론성지의 거룩한 공간에서, 깊은 위로와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돌아갑니다.
제천 배론성지 순례 정보
| 위치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
| 문의 | 043-651-4527 |
| 공식 홈페이지 | 배론성지 |
| 주요 순례 장소 | 황사영 백서 토굴,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소, 성요셉 신학당 복원 공간,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
| 기념성당 건립 | 1999년, 최양업 신부 사제 서품 150주년 기념 |
| 방문 전 확인 | 미사 시간, 성전 내부 개방, 단체 순례·피정 및 기도 공간 이용은 성지에 문의해 주세요. |
충북 제천에 자리하지만 교회 관할은 천주교 원주교구입니다. 계절의 풍경을 즐기는 방문객과 기도하러 온 순례자가 함께 머무는 곳인 만큼, 조용히 걷고 촬영 안내를 따라 주세요. 언덕과 산책길에서는 편한 신발을 신고 천천히 이동하면 좋겠습니다.
티파니의 성지순례 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의 위로가 되셨다면 댓글로 여러분의 순례 이야기도 나누어 주세요. 찬미 예수님!
참고 자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 황사영 알렉시오 약전: 생애와 시복 추진 대상자 소개.
- 가톨릭평화신문 — 「무부무군 명분으로 천주교 대박해… 다시 목자 없는 교회로」: 황사영 백서의 군사 개입 요청과 박해의 맥락.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최양업 신부 생애 및 가경자 선포 소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배론성요셉신학당」 및 「배론」: 신학교 역사와 지명의 유래.
- 『경향잡지』 2020년 11월호 — 「원주교구 배론성지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굿뉴스 수록): 건립 취지, 배 모양의 상징과 성당 규모.
- 굿뉴스 가톨릭정보 — 배론 성지: 주요 유적과 신학당 복원, 기념성당 소개.
- 한국관광공사 — 배론성지: 주소와 대표 문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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