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땀의 순교자,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생애와 유산
안녕하세요, 티파니입니다. 배론성지의 역사와 황사영 백서 토굴을 돌아본 데 이어, 오늘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생애와 배론성지에 남은 신앙의 유산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피의 순교자’로 기억한다면, 최양업 신부님은 산골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삶을 바친 ‘땀의 순교자’로 기억됩니다. 이 이름에는 박해 속에서도 사람을 찾아가고, 성사를 베풀며, 하루하루 자신의 몸과 시간을 내어 준 사제의 헌신이 담겨 있습니다.

배론성지의 나지막한 언덕길을 오릅니다. 길가의 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에, 험한 산길을 넘던 사제의 거친 숨결을 떠올려 봅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평생 길을 나선다는 것은 얼마나 깊은 사랑일까요. 그분이 걸었던 먼 길을 생각하며 저의 걸음도 조금 느려집니다.
지난 글 ① — 배론성지의 역사와 현대 성전 건축 이야기
지난 글 ② — 황사영 백서 토굴, 절박한 신앙과 역사의 질문
박해 속에서 자란 소년, 첫 신학생이 되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1821년 3월 1일, 충청도 홍주 다락골의 새터, 지금의 충남 청양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어머니는 복자 이성례 마리아입니다. 박해를 피해 거처를 옮겨야 했던 가정에서 신앙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1836년 모방 신부님에게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은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김대건 안드레아와 함께 사제를 향한 길에 들어섰습니다. 세 소년은 그해 12월 2일 순명을 서약하고, 이튿날 밀사들의 안내를 받아 서울을 떠났습니다. [1]
아직 부모님의 품이 그리울 나이였습니다. 낯선 말과 낯선 풍경을 향해 걸어가던 소년의 마음에는 설렘만큼 두려움도 있었겠지요. 저는 그 출발을 생각하며, 믿음이란 모든 길을 미리 알고 떠나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 마음을 맡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마카오 유학과 부모님의 순교, 슬픔 속에서도 이어진 배움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한 신학생들은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마련된 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11월 동료 최방제가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1839년에는 마카오의 소요를 피해 필리핀 마닐라로 거처를 옮겨야 했습니다.
고국에서는 더 아픈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최경환 성인은 1839년 기해박해 중 옥사하셨고, 어머니 이성례 복자는 1840년 1월 31일 서울 당고개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주교회의 연보는 최양업이 1843년 김대건을 통해 부모님의 순교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합니다. [1] [2]
먼 타국에서 부모님의 마지막을 전해 들었을 청년의 슬픔을 제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의 마음을 대신 말할 수는 없지만, 돌아가 안아 드릴 수도 없었던 그 거리가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최양업은 공부를 이어 갔고, 1844년 12월 만주 소팔가자에서 김대건과 함께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여섯 차례의 귀국로 탐색, 13년 만에 돌아온 조선
귀국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주교회의 연보는 1842년부터 1849년까지 여섯 차례의 귀국로 탐색을 기록합니다. 훈춘에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했고, 1847년에는 타고 있던 배가 고군산도 부근에서 난파하는 위험을 겪었습니다. [1]
그사이 동료 김대건은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조선으로 돌아갔으나, 이듬해 병오박해로 순교했습니다. 최양업은 그 비보를 듣고도 귀국을 향한 노력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한국인 두 번째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3]
그해 말, 마침내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신학생으로 고국을 떠난 지 13년 만이었습니다. 오래 기다렸던 귀향은 편히 쉬기 위한 돌아옴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그의 발걸음은 자신을 기다리는 교우들을 향하게 됩니다.
닫힌 문 앞에서 몇 번이고 다시 길을 찾았던 시간을 떠올립니다. 저는 작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쉽게 지치곤 합니다. 그 긴 기다림을 견뎌 낸 마음을 생각하면, 오늘 제 앞의 작은 어려움도 조금 더 차분히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열두 해의 땀의 사목, 신자들이 있는 곳으로
귀국 후 최양업 신부님은 충청·경상·전라·강원·경기 지역에 흩어진 교우들을 찾아 사목했습니다. 약 11년 6개월에 걸친 여정은 흔히 ‘12년의 사목’으로 불립니다. 큰길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 교우촌까지 찾아가 성사를 베풀고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3]
교회의 여러 소개 자료는 그 여정을 해마다 7천 리에 이르는 길로 전합니다. 그 숫자는 무엇보다 광범위한 사목과 고된 이동을 짐작하게 합니다. 박해의 위협 속에서도 신부님은 교우들을 만나기 위한 수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4]

길의 끝에는 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해성사를 기다린 이, 아이의 세례를 기다린 부모, 병상에서 사제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겠지요. 그들에게 신부님의 도착은 자신들이 잊히지 않았다는 위로였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까운 이의 안부조차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곤 합니다. 누군가를 찾아가는 작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 지친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 것. 신부님의 먼 길 앞에서 제가 오늘 걸어갈 수 있는 사랑의 거리를 생각합니다.
우리말 신앙서와 후학 양성, 다음 세대에 남긴 사랑
신부님의 사목은 교우촌을 방문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한문 교리서와 기도서를 우리말로 옮기고, 순교자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신앙을 더 가까운 언어로 전하고 다음 세대에 남기려는 노력이었습니다. [5]
이와 함께 최양업 신부님은 천주가사와도 깊이 연결되어 기억됩니다. 교리를 노래로 익히게 했던 천주가사는 신자들의 일상에 믿음을 스며들게 했습니다. 다만 「사향가」 등 개별 작품을 신부님이 직접 지었는지는 문헌적 근거를 둘러싼 연구가 있어, 모든 작품의 저자를 단정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5]
1853년 여름에는 진천 배티 소신학교의 지도를 맡았고, 이듬해 세 신학생을 페낭 신학교 유학길에 보냈습니다. 이 배티의 배움터는 1855년 제천 배론에 설립된 성요셉 신학당과 구분되는 곳입니다. [1] [6]
한 사람의 사제가 자신의 뒤를 이을 이들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습니다. 당장 눈앞의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누군가의 내일을 생각하는 사랑. 그 조용한 준비가 있었기에 믿음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졌을 것입니다.
1861년 선종과 배론성지 안장, 긴 여정이 머무는 자리
1861년, 최양업 신부님은 사목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베르뇌 주교님에게 가던 중 병을 얻었습니다. 과로에 장티푸스가 겹쳐 그해 6월 15일, 마흔의 나이로 선종하셨습니다. 그해 11월에는 선종지에 임시로 모셨던 시신을 배론으로 옮겨 안장했습니다. [3] [5]
정확한 선종지는 문경과 진천 등 여러 견해가 있어 한 장소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길 위에서 교우들을 돌보던 사제가 사목 여정 중 생을 마쳤다는 사실 앞에서, 신부님의 삶 전체가 하나의 봉헌처럼 느껴집니다.
배론성지 언덕의 묘소는 그 긴 여정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이곳에 와서 신부님의 생애를 되짚으면, 묘소와 기념성당이 단순히 지나쳐 보는 건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헌신을 기억하는 기도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가경자 최양업 신부, 시복을 기다리는 한국 교회
2016년 4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양업 신부님의 영웅적 성덕을 인정하는 교령을 승인했습니다. 이로써 신부님은 가경자로 선포되었습니다. 가경자는 이미 복자나 성인으로 선포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교회의가 공개한 진행 상황에 따르면 2026년 3월 26일에는 시복을 위한 기적 심사의 의학자문위원회 단계를 통과했습니다. 이 단계 통과가 곧 시복 확정을 뜻하지는 않으며, 한국 교회는 이후 절차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7]
신부님의 삶을 기억하는 일은 기다림 속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분의 헌신을 제 일상의 작은 친절과 성실함으로 이어 가는 일이,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티파니의 묵상: 오늘 나의 자리에서 걷는 땀의 신앙

배론성지에서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동상 곁에 앉아 그 손 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어 봅니다. 마카오로 향하던 열다섯 소년의 마음, 타국에서 부모님의 순교 소식을 들었을 때의 슬픔, 험한 산길을 넘어 신자들을 찾아갔을 사제의 발을 떠올립니다. 감사함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가만히 밀려옵니다.
매일 자신의 몸과 시간을 조금씩 내어 주며 바치는 ‘땀의 순교’가 오늘을 살아가는 저에게 깊은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아주 큰일을 해내지 못하더라도, 주어진 하루를 사랑으로 살아 낼 수는 있겠지요. 지친 가족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고, 작은 약속을 지키고,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주님, 최양업 신부님이 거친 산길에서도 교우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셨듯, 저 역시 일상의 고단함과 작은 시련 속에서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단단함을 주소서. 제 곁의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작은 수고에도 감사하며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묘소 주변의 나무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습니다. 마흔 해의 짧은 삶을 하느님과 교우들에게 내어 주었던 사제의 사랑이 배론성지의 공기 속에 조용히 머무는 듯합니다. 신부님이 걸어가신 먼 길을 오늘 제가 다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제 앞에 있는 한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제천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묘소 순례 정보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
| 문의 | 043-651-4527 |
| 주요 순례 장소 |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소,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성요셉 신학당 복원 공간 |
| 묵상 포인트 | 묘소로 향하는 길에서 신부님의 사목 여정과 일상 속 헌신을 묵상해 보세요. |
| 방문 전 확인 | 미사 시간과 성전·기도 공간 개방 여부는 배론성지 공식 안내 또는 전화로 확인해 주세요. |
묘소로 향하는 언덕길은 개인의 보행 여건과 날씨에 맞춰 천천히 걸어 주세요. 경내의 신부상 앞에서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를 찾아가는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보시면 좋겠습니다.
티파니의 성지순례 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발자취가 여러분의 하루에도 작은 위로와 용기로 남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순례 이야기도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찬미 예수님!
참고 자료
- [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최양업 신부 생애」 — 출생, 유학, 귀국로 탐색, 서품과 배티 신학교 연혁.
-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이성례 마리아 약전」 — 어머니의 순교일과 생애.
- [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최양업 신부 약전」 — 사목 활동, 한글 번역과 배론 안장.
- [4] 천주교 전주교구, 「조선복음화의 밀알이 된 땀의 증거자」 — 사목 여정과 7천 리의 소개.
-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양업」 — 사목·저술·번역 및 천주가사 저자와 선종지에 관한 연구.
- [6] 배티성지, 「최양업 신부 생애와 여정」 — 배티 신학교와 페낭 유학.
- [7]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최양업 신부 시복 시성 진행 상황」 및 청주교구 2026년 3월 발표 — 가경자 선포와 기적 심사. 시복 관련 정보 확인일: 2026년 10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