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산골에 배움의 등불을 밝힌 성 요셉 신학당
안녕하세요, 티파니입니다. 배론성지의 역사와 황사영 백서 토굴,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 그리고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제천 배론성지 성 요셉 신학당을 찾아갑니다.
성지 안쪽을 걷다 소박한 초가집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낮게 내려온 지붕과 따뜻한 빛깔의 흙벽, 마당에 흩어진 가을 낙엽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작은 집이 한때 조선의 미래를 준비하던 배움터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평범해 보이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1855년 세워진 성 요셉 신학당은 한국 천주교회가 사제를 길러 내기 위해 마련한 정식 신학교였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책을 펴고, 낯선 언어를 익히며, 다음 세대를 준비했던 곳입니다. 저는 오늘 이곳에서 누군가의 내일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 준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고 싶습니다.
함께 읽기 ① — 배론성지의 역사와 현대 성전 건축 이야기
함께 읽기 ② — 황사영 백서 토굴 이야기
함께 읽기 ③ —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생애와 유산
1855년, 세 칸 초가집에서 시작된 성 요셉 신학당
19세기 중엽, 조선의 신자들은 사제를 만나기조차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신학생을 교육하는 데에도 위험과 어려움이 컸습니다. 이 땅에서 사제를 길러 낼 안정적인 배움터가 필요했습니다.
1855년 메스트르 신부는 배론 교우촌에 성 요셉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우리가 흔히 ‘성 요셉 신학당’ 또는 ‘배론 신학교’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그 시작을 가능하게 한 이는 자신의 집을 내어 준 교우촌 회장 장주기 요셉이었습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집을 세 칸짜리 초가 살림집으로 설명합니다. 한 칸은 사제의 숙소 겸 성당으로, 두 칸은 교실 겸 기숙사로 사용했습니다. 공부와 기도, 잠자리가 서로 가까이 놓인 작은 공동체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집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울타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주기 성인은 그 안으로 다른 이들의 미래를 들였습니다. 저는 흙벽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나에게 소중한 자리를 기꺼이 내어 준다는 것은, 말로 하는 다짐보다 훨씬 깊은 사랑이었겠구나 하고요.
초가집 안에서 만난 라틴어와 신학, 근대 교육의 발자취
성 요셉 신학당이 특별한 까닭은 건물의 규모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진 교육에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곳을 한국 교회가 처음으로 격식을 갖추어 설립한 신학교로 소개합니다. 사제 양성을 위한 교육을 일정한 장소에서 이어 가려 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교장 푸르티에 신부와 교수 프티니콜라 신부 등이 신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은 한문과 라틴어를 익히고,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언어와 사상을 배우는 과정에서 서양 학문과 문물을 접했으며, 오늘날 가톨릭대학교도 이 신학당을 대학의 효시로 설명합니다.

이를 오늘날의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한 건물에 들어선 모습과 똑같이 생각하기보다는, 기초 언어 교육에서 사제 양성으로 이어지는 배움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조선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라는 말 뒤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시도한 사람들의 노력이 놓여 있습니다.
재현된 교실 안의 책과 인물들을 바라보며, 낯선 라틴어 문장을 더듬어 읽는 옛 신학생들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 봅니다. 문밖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어도 배움은 멈추지 않았겠지요. 편안한 환경을 갖춘 뒤에야 시작하겠다고 미루던 제 마음이 문득 부끄러워집니다.
언어를 잇는 연구, 신앙을 더 가까이 전하려는 마음
이곳에서 교육을 맡은 선교사들은 조선의 말을 배우고 정리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푸르티에 신부의 《조선어연구》와 《한한라자전》, 프티니콜라 신부의 《나한사전》 등을 소개합니다. 한국어·한문·라틴어를 잇는 어휘 연구의 흔적입니다.
다만 이 자료들은 병인박해 때 소실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늘 우리가 그 원고를 그대로 펼쳐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낯선 언어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신앙을 전하려 했던 수고를 짐작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배우는 일은 그 사람의 삶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뜻을 묻고, 발음을 되풀이하고, 익숙하지 않은 문장을 다시 적었을 시간을 생각합니다. 이 산골에서의 공부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더 가까이 말을 건네려는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1866년 병인박해, 교실을 지키던 이들의 마지막 길
신학당의 배움은 1866년 병인박해로 중단되었습니다.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가 체포되어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고, 장주기 요셉도 충청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했습니다. 스승과 공동체의 버팀목을 잃은 학교는 설립 11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장주기 성인은 집을 내어 준 데서 그치지 않고 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학교 살림도 도왔습니다. 신학당의 역사는 선교사들의 노력과 함께, 배움을 떠받친 한 평신도의 꾸준한 봉사 위에 세워졌습니다.
학생들이 떠난 뒤의 고요를 떠올리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책을 읽던 소리도, 내일의 수업을 준비하던 손길도 멈추었겠지요. 그 빈자리를 생각할수록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배우고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톨릭대학교로 이어진 배움의 뜻, 다시 만나는 초가 신학당
학교의 문은 닫혔지만 사제를 양성하려는 노력은 이어졌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연혁은 1855년 배론의 성요셉신학교에서 출발하여, 1885년 부엉골의 예수성심신학교 재건, 1887년 서울 용산 이전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소개합니다.
오늘 배론에서 보는 초가집은 그 옛 건물이 온전히 남은 것이 아니라, 신학당의 역사를 기억하도록 복원한 공간입니다. 굿뉴스 가톨릭정보는 현재 신학당을 2003년 재복원된 모습으로 소개합니다.

내부 흙벽에 걸린 흑백 단체사진을 오래 바라봅니다.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과 촬영 시점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 앞에 모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 장소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모여, 오늘의 우리가 다시 이 앞에 설 수 있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복원된 집은 지나간 모양만 되살린 건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작은 교실에서 시작한 뜻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는 자리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작더라도, 사랑으로 건넨 배움은 누군가의 삶에서 오래 이어질 수 있음을 느낍니다.
티파니의 묵상: 내 삶의 자리에도 작은 등불을
복원된 성 요셉 신학당 앞에 가만히 섭니다. 초가지붕 너머로 내려앉은 햇살이 흙벽을 따뜻하게 비춥니다.
작은 촛불 아래 낯선 글자를 한 자 한 자 짚어 읽었을 신학생들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봅니다.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시절에도 책을 펴고 배움을 이어 갔을 그 마음이 가슴을 울립니다. 하느님을 더 깊이 알고, 누군가의 아픔을 보듬어 줄 사제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들. 그들의 배움은 하루하루 정성껏 바치는 기도이기도 했겠지요.
주님, 170여 년 전 이 작은 초가집에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신학생들과 신부님들의 열정을 돌아봅니다. 편안한 환경 속에서도 작은 시련에 쉽게 낙심하던 제 마음을 살펴 주소서. 세상이 어둡고 막막하게 느껴질 때에도, 제 삶의 자리에서 작은 신앙의 등불을 켜게 하소서.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가르치고, 또 겸손하게 배우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저는 오늘 이곳에서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다짐 하나를 품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우기, 알고 있는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누기, 누군가가 자라날 시간을 조급하게 재촉하지 않기. 장주기 성인이 집을 내어 주었듯, 저도 제 마음 한쪽에 다른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낙엽이 내려앉은 마당을 다시 바라봅니다. 어둠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씨앗을 심었던 이들의 마음을, 오늘은 제 가슴속에 조용히 담아 갑니다.
제천 배론성지 성 요셉 신학당 순례 안내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
| 문의 | 043-651-4527 |
| 주요 관람 | 복원된 성 요셉 신학당 외관, 내부 재현 공간과 전시 사진 |
| 함께 둘러볼 곳 | 황사영 백서 토굴,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소,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
| 관람할 때 | 건물과 내부 조형물은 역사적 장소와 배움의 장면을 기억하는 재현 공간으로 살펴보세요. |
| 방문 전 확인 | 내부 개방 여부와 미사·단체 순례 안내는 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확인해 주세요. |
촬영과 출입은 현장 안내를 따르고, 기도하는 순례자들을 배려해 조용히 머물러 주세요. 성지의 여러 장소를 서둘러 지나가기보다, 이 작은 집 앞에서 잠시 내 삶의 배움과 나눔을 돌아보셔도 좋겠습니다.
티파니의 성지순례 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 요셉 신학당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따뜻한 울림과 배움의 용기로 남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순례 이야기도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찬미 예수님!
참고 자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배론 성지」 — 신학당 설립과 장주기 요셉, 교수 신부들과 폐교.
- 한국가톨릭대사전, 「배론 성 요셉 신학교」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배론성요셉신학당」 — 초가집 구조와 교육 내용.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연혁」 및 대신학교 연혁표 — 1855년 설립과 1885·1887년 신학교의 계승.
-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 가톨릭 출판사(出版史)」 — 푸르티에·프티니콜라 신부의 언어 연구와 자료 소실.
- 한국가톨릭대사전, 「장주기」 — 집의 제공과 신학당 운영 봉사.
- 굿뉴스 가톨릭정보, 「배론 성지」 — 복원 신학당 사진 설명, 주소와 연락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