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 이야기

– 우리말 성경에 일생을 바친 사제

원주 용소막성당 마당을 고요히 거닐다 보면, 소박하게 자리한 선종완 라우렌시오 사제 유물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겨레의 언어로 흘러들도록 연구와 번역에 생애를 바친 한 사제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티파니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수난의 세월을 견뎌 낸 용소막성당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교우촌에서 태어나 우리말 성경 번역에 큰 자취를 남긴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1915~1976)의 일대기와 영성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 권의 성경을 펼치는 일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우리말로 읽히기까지 누군가는 낯선 문자를 배우고, 문장의 뜻을 거듭 살피며 오랜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유물관에서 만난 기록들은 그 수고를 조용히 돌아보게 합니다.

지난 글 읽기: 원주 용소막성당을 찾아서 — 수난의 세월을 견뎌낸 붉은 성전

원주 용소막성당의 선종완 노렌조 신부 생가터 표지석
가을 나무 아래 놓인 선종완 신부 생가터 표지석. 돌에 새겨진 ‘노렌조’는 라우렌시오의 옛 표기입니다.

용소막 교우촌에서 자란 성소의 씨앗

선종완 신부는 1915년 8월 8일,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용소막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의 붉은 벽돌 용소막성당이 완공된 해이기도 합니다. 생가터 표지석 앞에 서니, 한 소년의 삶과 이 성전의 시간이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습니다.

신앙 안에서 자란 그는 동성상업학교 을조 소신학교와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사제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성경 연구에 마음을 두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등 외국어 공부에 힘썼습니다.

1942년 2월 14일 사제로 서품된 뒤에는 교수와 사제로 살아가며 배움과 가르침의 길을 이어 갔습니다. 신부의 학문은 신앙과 떨어진 지식이 아니라,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 전하려는 길이었습니다.

로마와 예루살렘에서 깊어진 말씀의 공부

1948년, 선종완 신부는 로마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후 로마의 성서대학과 예루살렘의 성서 연구기관 등에서 성경과 고고학을 공부했습니다. 성경이 쓰인 언어와 그 말씀이 전해진 땅을 살피는 공부였습니다.

선종완 신부 사진이 있는 로마 성서대학 등록 서류와 예루살렘 수학 관련 증명 자료
유물관에 전시된 유학 관련 서류. 말씀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려 했던 사제의 배움의 여정을 떠올립니다.

전시된 유학 관련 서류에는 젊은 신부의 사진과 낯선 외국어가 남아 있습니다. 종이 위의 이름과 기록을 바라보며, 익숙한 고향을 떠나 배움을 이어 갔을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그 배움의 끝에는 우리말로 말씀을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귀국 후에는 오늘날 가톨릭대학교로 이어지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연구와 번역에 힘썼습니다. 한 사람의 공부가 다음 세대 사제들의 배움으로 이어지고, 다시 신자들이 읽는 말씀으로 흘러간 셈입니다.

우리말 구약성경 번역과 공동번역성서

선종완 신부는 1950년대부터 구약성경 번역에 본격적으로 힘을 쏟았습니다. 1958년에는 우리말로 옮긴 『창세기』를 출간했고, 이후에도 여러 구약성경을 번역해 펴냈습니다. 성경 원문의 뜻을 우리말 독자에게 전하려 했던 선구적인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1968년 공동번역 사업의 가톨릭 측 전문위원으로 참여해 문익환 목사 등 다른 번역자들과 구약성경을 함께 옮겼습니다. 서로 다른 교파의 학자들이 같은 말씀 앞에서 뜻과 표현을 살핀, 교회 일치의 의미도 지닌 작업이었습니다.

선종완 신부가 힘을 보탠 『공동번역성서』는 그가 선종한 뒤인 1977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오늘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2005년판 『성경』과는 별개의 번역본이지만, 우리말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역사에서 신부의 헌신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한 문장을 옮기기 위해 원문을 읽고, 다른 자료와 대조하며, 우리말의 결을 고르는 일. 그 수고를 생각하면 우리가 매일 펼치는 성경책의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길을 닦은 이들의 시간도 그 안에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유물관 전시장의 사해 두루마리 관련 도판과 옛 기도서 및 성가 자료
유물관에서 만난 성경 연구와 신앙생활 관련 자료들. 사해 두루마리 관련 도판과 옛 책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모영보수녀회,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다

선종완 신부의 삶은 서재 안의 연구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1960년 3월 25일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했습니다. 오늘날의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로 이어지는 공동체입니다.

수도 성소가 있어도 가난이나 학력 때문에 뜻을 이루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길을 열고, 기도와 노동, 자립과 봉사를 함께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살아가려는 마음이 공동체의 바탕에 놓여 있었습니다.

말씀이 학문적 이해에만 머무르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 저는 그 대목에서 신부의 번역과 수도회 설립이 서로 떨어진 일이 아니었음을 느낍니다. 말씀을 우리말로 전하는 일과,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 하나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1976년 선종, 유물관에 남은 생애의 흔적

선종완 신부는 1976년 7월 11일 간암으로 선종했습니다. 연구와 번역, 후학 양성과 수도 공동체 설립에 바친 삶은 우리말 성경과 그가 세운 공동체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소막성당에는 1988년 11월 신부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유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번역 원고와 연구 자료, 여러 책을 함께 살펴보기 위해 고안한 육각 책상 등은 신부의 성경 연구를 보여 주는 유물로 소개됩니다.

이번 순례 사진에는 생가터 표지석, 유학 관련 서류, 성경 연구와 신앙생활 관련 전시 자료를 담았습니다. 자료를 하나하나 바라보며, 한 사제가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 전하기 위해 쌓아 간 시간을 헤아려 봅니다.

티파니의 묵상: 지식으로 읽는 말씀에서 사랑으로

유물관 안에 가만히 서서, 유리 너머로 남은 신부의 연구 자료를 마주합니다. 문득 오늘날 제 손에 들린 매끄러운 성경책의 무게를 다시 느낍니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펼쳐 읽던 한 구절 뒤에도, 말씀을 전하려 애쓴 이들의 거룩한 헌신이 이어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책은 말없이 놓여 있지만, 그 앞에 선 제 마음에는 질문이 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얼마나 정성껏 읽고 있을까요. 읽은 말씀을 이웃을 향한 작은 사랑으로 옮기고 있을까요.

주님, 선종완 신부님이 피와 땀으로 우리말로 옮겨 주신 주님의 말씀을 제 삶의 등불로 삼게 하소서. 지식으로만 읽는 말씀이 아니라, 내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위로 실천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용소막성당 마당으로 나와 낙엽 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성당 뾰족탑 위로 지는 노을빛 아래, 말씀으로 세상을 밝히고자 했던 한 사제의 고결한 영성이 오늘 제 마음에 따스한 울림으로 피어납니다.

선종완 신부 유물관과 용소막성당 순례 안내

순례지용소막성당 내 선종완 라우렌시오 사제 유물관과 생가터
주소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지번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719-2
문의033-763-2343
묵상 포인트생가터 표지석, 성경 번역과 연구 관련 기록, 유학 관련 서류와 전시 유품
함께 둘러볼 곳용소막성당, 성모동굴,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공간
방문 전 확인유물관 개방 시간, 단체 방문, 피정·기도 공간 이용 여부는 본당에 문의해 주세요.

유물관은 신부의 삶을 기억하는 공간이며, 성당에서는 지금도 미사와 기도가 이어집니다. 촬영 안내를 따르고 전시물을 만지지 않으며 조용히 머물러 주세요.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본원과 신부의 묘소는 용소막성당 구내와 다른 장소인 경기도 과천에 있으므로 방문 계획을 세울 때 구분해 주세요.

티파니의 성지순례 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한 구절이 여러분의 하루에도 작은 등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찬미 예수님!

참고 자료와 사진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 이야기”에 대한 1개의 생각

  1. 핑백: 배론성지를 찾아서 ① - 티파니의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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