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용소막성당을 찾아서

– 수난의 세월을 견뎌낸 붉은 성전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의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 소리가 하느님의 축복으로 느껴지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작은 풍경에 감사하며, 오늘 순례가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안녕하세요, 티파니입니다. 오늘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의 고즈넉한 마을에 자리한 원주 용소막성당을 찾았습니다. 풍수원본당과 원주본당, 지금의 원동 주교좌본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설정된 본당입니다.

높이 솟은 종탑과 붉은 벽돌, 오래된 느티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견뎌 낸 수난과 은총의 역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1915년에 완공된 성전은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을 지나 오늘의 순례자를 맞이합니다.

원주 용소막성당의 붉은 벽돌 종탑과 계단을 오르는 순례자
가을 나무 사이로 솟은 용소막성당의 종탑. 계단을 오르며 오늘의 순례가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풍수원성당 순례에서는 신자들이 벽돌을 굽고 나무를 나르며 성전을 세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이어진 믿음과, 성경 번역에 생애를 바친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의 자취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지난 글 읽기: 풍수원성당을 찾아서 ③ — 피와 땀과 눈물의 건축 이야기

박해의 피신처에서 교우촌과 본당으로

용소막 신앙 공동체의 뿌리는 1866년 병인박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박해를 피해 산간 지역으로 들어온 신자들은 평창과 황둔 등지를 거쳐 살며 믿음을 이어 갔습니다. 이후 1893년부터 교우들이 용소막으로 한두 집씩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교회장 최도철 바르나바도 1898년 용소막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교우들과 함께 신부의 거처를 포함한 초가 열 칸의 경당을 마련하고 공소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이듬해에는 백씨 집안과 선병로 베드로 일가 등이 이주해 오며 교우촌이 자리를 잡아 갔습니다.

1900년 10월에는 뮈텔 주교가 방문해 경당을 축복했습니다.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마침내 1904년 5월 4일, 용소막은 원주본당의 공소에서 독립된 본당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초대 주임은 프와요 신부였습니다.

처음부터 붉은 벽돌 성당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가 경당에서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의 믿음이 먼저 있었고, 그 믿음 위에 지금의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1915년, 신자들의 손길로 완성한 붉은 성전

제2대 주임 기요 신부는 1913년 새 성당 건립을 준비하며 장마철을 이용해 목재를 운반했습니다. 뒤이어 1914년 부임한 제3대 주임 시잘레 신부가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공사를 이끌었고, 신자들도 건축에 힘을 보탰습니다.

준비와 공사를 거쳐 1915년 가을, 약 100평 규모의 벽돌조 성당이 완공되었습니다. 성당의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입니다.

신자들은 벽돌을 구워 나르고, 성당을 받칠 목재를 마련했습니다. 장마로 불어난 물길을 이용해 나무를 옮겼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건축의 시간은 곧 신자들의 노동과 기도의 시간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소막성당은 높은 첨탑과 아치형 창,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의 조화가 아름다운 고딕식 성당입니다. 내부에서는 나란히 선 목조 기둥이 가운데 공간과 양옆 공간을 나눕니다. 아담한 규모 안에 긴 시선과 고요한 기도 자리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성당 터에 관해서는, 옛 신림역 인근에 성당을 지으려던 때 한 노인이 훗날 철마가 지나갈 곳이라며 다른 터를 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역사적 사실로 확정된 일화라기보다는, 이곳 사람들이 성당의 자리를 소중히 기억하며 전해 온 전설로 읽어 봅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에 남은 상처

평화로워 보이는 성전도 우리 근현대사의 거센 물결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1943년에는 일제에 의해 성당의 종이 공출되었습니다. 기도 시간을 알리던 종소리마저 빼앗겼던 때였습니다.

6·25전쟁 중에는 성당이 군의 식량 창고로 사용되었고, 성당 천장과 내부 성모상이 총탄으로 훼손되었습니다. 본당의 사목 문서와 명덕국민학원의 교사 건물도 불타는 피해를 겪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던 성전이 상처 입고, 공동체의 기록까지 사라지는 일은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요. 오늘의 고요한 실내를 바라보며 그 시간을 생각하니, 눈앞의 평화가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신자들은 파손된 성당을 돌보며 공동체를 이어 갔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와 정비가 이루어졌고, 2014년에는 문화유산 보수 공사를 마친 감사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지금의 성전에는 처음 지은 이들의 정성뿐 아니라 다시 보살피고 지켜 온 이들의 손길도 겹겹이 남아 있습니다.

원주 용소막성당 내부의 제대와 목조 기둥, 묵주를 든 손
긴 의자와 기둥 너머로 제대가 보입니다. 묵주를 쥔 손에 마음을 모아, 이곳을 지켜 온 신앙을 생각합니다.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 말씀을 우리말로

용소막성당을 순례하며 함께 기억할 인물은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1915~1976)입니다. 용소막에서 태어난 신부는 성경 연구와 번역,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했습니다.

신부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등 성경의 언어를 연구하고, 1950년대부터 구약성경 번역과 출판을 이어 갔습니다.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한 공동번역성서 사업에 참여해 구약 번역에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 우리말로 말씀을 전하려 했던 신부의 오랜 헌신은 오늘까지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1988년 11월 문을 연 선종완 라우렌시오 사제 유물관에는 신부의 번역 원고와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러 참고 도서를 함께 펼쳐 보기 위해 고안한 육각 책상도 신부의 성경 연구를 보여 주는 유물로 소개됩니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이 겨레의 언어로 읽히기를 바라며 밤을 지새웠을 한 사제의 학구열과 영성이 가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펼치는 우리말 성경 한 권 뒤에 얼마나 많은 공부와 수고가 담겨 있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성모동굴 앞에서 잠시 멈추는 순례

성당 주변에는 성모동굴과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를 바치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본당의 역사와 선종완 신부의 삶을 읽은 뒤에는 설명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머무는 시간도 가져 보시면 좋겠습니다.

가을 나무 아래 성모동굴의 성모상과 봉헌초
성모동굴 앞에 놓인 봉헌초. 고요히 머물며 이 땅의 평화와 상처 입은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가을 나무 아래 성모상 앞에 놓인 봉헌초를 바라봅니다. 빛 하나마다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전쟁 중 성당 안의 성모상이 훼손되었다는 기록을 떠올리며, 이 땅의 평화와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해 마음을 모읍니다.

용소막에는 피정 공간인 두루의 집과 기도실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피정이나 별도 기도 공간 이용을 원하시면, 개방 여부와 예약 필요 여부를 성당에 먼저 문의해 주세요.

티파니의 묵상: 상처 속에서도 이어지는 믿음

가을빛이 내려앉은 용소막성당 옆으로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호위병처럼 성당을 지키고 있어 참으로 든든해 보입니다. 말없이 서 있는 나무들과 붉은 벽돌 앞에서, 저는 오래 버틴다는 것의 힘을 생각합니다.

지금은 온화한 모습으로 순례자를 맞이하는 성모상 앞에서, 총탄에 훼손되었던 성모상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 기록은 이 땅의 아픔과 신자들의 눈물을 친히 껴안으셨을 어머니의 깊은 상흔처럼 마음에 남습니다.

빼앗긴 종소리와 무너진 일상 속에서도 기도는 끝내 이어졌습니다. 선종완 신부님이 번역에 힘쓰신 성경 말씀 또한 오늘 우리의 마음을 생명수로 적셔 줍니다.

주님, 전쟁의 총탄에 성전이 뚫리는 수난 속에서도 용소막의 선조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깊은 흉터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오늘날 저희에게도, 그 상처가 은총의 훈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삶의 무게가 무겁고 마음의 성전에 상처가 가득할 때, 원주 용소막성당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수난의 세월을 버텨 낸 붉은 벽돌이 여러분의 아픈 마음을 조용히 안아 줄 것입니다.

원주 용소막성당 순례 정보

주소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지번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719-2
전화033-763-2343
본당 설정1904년 5월 4일
현재 성당 완공1915년 가을
문화유산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원주 용소막성당」(1986년 5월 23일 지정, 옛 유형문화재 제106호)
함께 살펴볼 곳붉은 벽돌 성전과 종탑, 선종완 라우렌시오 사제 유물관, 성모동굴,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공간
방문 전 확인미사 시간, 유물관 관람, 피정·기도 공간 이용 여부는 본당에 문의해 주세요.

성당은 지금도 미사와 기도가 이어지는 공간입니다. 내부에서는 조용히 머물고 촬영 안내를 따라 주세요. 마당과 계단,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다른 순례자들의 기도 시간도 배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티파니의 성지순례 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의 위로가 되셨다면 댓글로 여러분의 순례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찬미 예수님!

참고 자료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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