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원성당을 찾아서 ③

– 피와 땀과 눈물의 건축 이야기

가을의 향기가 점점 더 짙어져 가는 이 무렵, 붉게 물든 나뭇잎 위로 오랜만에 비가 촉촉이 내려앉았습니다. 가을로 잔뜩 물들어 있는 풍경이 붉은 벽돌의 풍수원성당 모습과 잘 어우러져 한층 고풍스러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티파니입니다. 앞서 전해 드린 신태보 베드로 복자와 교우촌의 시작,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의 사랑에 이어, 오늘은 풍수원성당 건축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이번 글은 풍수원 삼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깊은 산골에서 벽돌을 굽고 나무를 베어 나르며 세워 올린 붉은 성전. 그곳은 신자들이 힘겹게 일구어 낸 기적의 현장이며, 선조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기도가 깃든 자리이기도 합니다.

비 오는 날 풍수원성당 정면과 노란 우산을 든 순례자
비 내리는 가을의 풍수원성당. 붉은 벽돌 성전 앞에서, 이곳을 세운 이들의 손길을 생각합니다.

박해를 견딘 교우촌에서 본당으로

풍수원의 건축 이야기는 그보다 먼저 이곳에 모여 살던 신자들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박해를 피해 산골로 들어온 이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계를 꾸리며, 오랜 세월 기도와 교리를 지켜 왔습니다.

1888년 6월 20일, 풍수원은 본당으로 설정되었고 프랑스인 르메르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의 벽돌 성당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은 초가 성당에 모여 미사를 드렸습니다.

지금 눈앞의 성전은 그 작은 기도처에서 이어진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건물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도 함께 만나게 됩니다.

정규하 신부와 새 성전을 향한 마음

1896년, 제2대 본당 신부로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했습니다. 현장 안내판에는 그해 사제로 서품된 뒤 풍수원에서 47년 동안 사목하다 선종한 여정이 적혀 있습니다.

오래된 초가 성당을 돌보고 새 성전을 준비하는 일은 가난한 산골 공동체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정규하 신부와 신자들은 먼저 한옥 성당을 정비하고, 새로운 벽돌 성당을 세울 힘을 모았습니다.

성전을 향한 그 마음을 생각하면, 하느님을 모시는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싶었던 간절함이 전해집니다.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조금씩 마음과 정성을 보태야 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풍수원성당 전시 공간의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 생애 안내판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삶을 소개하는 현장 안내판. 풍수원에서 이어 간 47년의 사목 여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현성당과 맺은 인연, 장인들의 기술

새 성당의 모습을 구상할 때 참고한 곳은 서울의 약현성당이었습니다. 약현성당은 정규하 신부가 1896년 사제 서품을 받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사제 생활이 시작된 곳의 모습이 풍수원 성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습니다.

원주교구의 안내에는 중국인 목수 진 베드로 등이 건축에 참여했다고 나옵니다. 교회사 연구는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인 기술자들의 손길도 전합니다. 장인들의 기술과 신자들의 노동이 함께 모여 산골의 성전을 세워 간 것입니다.

풍수원성당은 고딕·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을 함께 지닌 벽돌조 성당으로 소개됩니다. 높은 종탑과 아치형 개구부가 시선을 이끌지만, 산자락 아래 놓인 전체 모습에는 소박하고 차분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붉은 벽돌 한 장, 나무 한 그루에 담긴 땀

풍수원성당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건축 과정에 신자들의 손길이 깊이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지 소개 자료에는 신자들이 벽돌을 직접 굽고, 목재를 마련하는 등 건축 자재를 스스로 조달했다고 전합니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성당까지 오가는 길, 흙을 이기고 불을 지피는 일, 무거운 나무를 옮기는 수고를 떠올려 봅니다. 오늘 우리가 잠시 머물며 기도하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노동을 온전히 내어 주어야 했던 자리였을 것입니다.

붉은 벽돌 한 장 한 장을 바라보니 그 안에 남아 있을 손의 온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신자들이 쌓아 올린 것은 벽뿐 아니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동체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성당 외관에는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출입구와 창의 가장자리, 종탑의 창과 장식을 천천히 살펴보면, 벽돌의 색과 모양이 만드는 섬세한 표정이 눈에 들어옵니다.

벽돌처럼 보이는 내부의 나무 기둥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기둥이 눈길을 붙잡습니다. 기둥 표면에는 줄눈을 그려 넣어, 멀리서 보면 벽돌을 쌓은 것처럼 보입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벗겨진 도장 아래로 나무의 결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실제로 벽돌인 줄 착각할 만큼 정교했습니다. 나무 기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바라보니, 재료의 한계를 아름다움으로 바꾸려 했던 세심함이 느껴졌습니다.

풍수원성당 내부의 벽돌무늬 목조 기둥과 매달린 조명
벽돌처럼 보이도록 줄눈을 그려 넣은 나무 기둥. 벗겨진 도장 아래로 오랜 세월의 결이 드러납니다.

매끈하게 새것으로 덮이지 않은 표면에는 오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자국들 앞에서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오늘까지 이어진 성전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로 세운 성전, 봉헌의 기쁨

관할 원주교구의 공식 안내에 따르면, 현재의 성당은 1909년 건립을 시작해 1910년 11월 9일 뮈텔 주교가 봉헌했습니다. 성당은 신자들이 함께 모여 예수 성심을 공경하고 기도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오랜 준비와 노동 끝에 성전이 봉헌되던 날, 신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벅찼을까요. 완성된 벽을 바라보며 흙을 만지던 손과 나무를 나르던 어깨를 떠올렸을 것만 같습니다. 그날의 감사와 기도를 오늘의 저는 조용히 상상해 봅니다.

건축 연대에는 자료별 차이가 있습니다. 일부 성지·관광 안내는 1905년 착공, 1907년 준공, 1909년 낙성식으로 소개합니다. 이 글에서는 관할 교구의 안내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참고 자료에 서로 다른 기록을 함께 남겼습니다.

티파니의 묵상: 내 마음에도 성전을 지으며

성당 마룻바닥에 놓인 낮고 긴 의자에 조용히 앉아, 한 세기 전 신자들이 세운 나무 기둥을 바라봅니다. 여전히 벽돌인 줄 착각할 정도로 정교했으나,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진 곳에서 나뭇결이 보였습니다. 신자들의 땀방울이었습니다.

벽돌을 굽고 나무를 나르던 화전민 신자들의 거친 손마디, 그리고 신자들과 함께 성전을 준비했을 정규하 신부님의 뒷모습이 마음속에 아른거립니다. 벽돌 하나하나는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과 기도의 고백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저 역시 내 삶의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앙의 성전을 지어 가고 싶습니다.

혹시 삶의 여정에서 마음의 성전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아프고 낙심될 때, 강원도 횡성의 풍수원성당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한 세기가 넘도록 그 골짜기를 지켜 온 붉은 성전이 여러분의 마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따뜻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풍수원성당 순례 정보와 관람 포인트

주소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전화033-342-0035
문화유산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 횡성 풍수원 천주교회(1982년 11월 3일 지정, 옛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주요 관람 포인트붉은 벽돌 외관과 종탑, 내부 목조 기둥, 풍수원성당 역사관, 뒤편 십자가의 길과 유물전시관
방문 전 확인미사 시간과 전시 공간 운영 여부는 성당 또는 해당 시설에 확인해 주세요.

성당은 지금도 신자들이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는 공간입니다. 내부에서는 조용히 머물고, 촬영 가능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오래된 기둥과 벽면은 눈으로 살펴보며, 비 오는 날에는 마당과 숲길의 미끄러운 구간에 유의하면 좋겠습니다.

세 편의 풍수원성당 이야기를 함께 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을 지켜 낸 사람들, 이웃을 품었던 손길, 그리고 기도로 세운 성전이 오래 마음에 남기를 바랍니다. 글이 마음의 위로가 되셨다면 댓글로 여러분의 순례 이야기도 나누어 주세요. 찬미 예수님!

참고 자료

“풍수원성당을 찾아서 ③”에 대한 1개의 생각

  1. 핑백: 원주 용소막성당을 찾아서 - 티파니의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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