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의 희생과 사랑
안녕하세요, 티파니입니다. 이번 풍수원성당 순례에서는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의 삶을 만나봅니다. 가난하고 몸이 불편했던 할머니가 이웃을 돌보고, 6·25전쟁 중에는 성당의 성물을 지켜낸 이야기입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난히 맑던 날이었습니다.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다 문득 풍수원성당이 떠올랐습니다.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서니 차창 밖으로 산과 마을의 풍경이 이어졌습니다. 성당에 가까워질수록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의 산자락에 자리한 풍수원성당. 오늘도 여전히 강건한 모습을 보여주는 붉은 성전 뒤로, 고요한 숲길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오르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초라한 무덤 앞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사제나 대단한 위인의 명패 대신, 평생을 가장 낮고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신도들과 이웃을 섬겼던 조이분 마리아(1891~1971) 할머니의 소박한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희생을 조금이나마 알기에 마음이 뭉클해져, 잠시 묵상하며 조용히 머물러 보고자 합니다.
고난과 핍박 중에 피어난, 가슴 뭉클한 사랑의 실천을 만나는 영성 순례길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지난 1편에서는 신태보 베드로 복자와 풍수원 신앙 공동체의 뿌리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작은 이들의 곁을 지킨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를 기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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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에서 만난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
풍수원성당 본당을 지나 뒷산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기면 십자가의 길 14처가 조성된 고즈넉한 숲길이 나타납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바치는 기도 소리와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어우러지는, 정결하고도 영적인 공간입니다.
이 기도의 길에서 만난 단정한 봉분은 풍수원 교우촌과 성당의 숨은 의인으로 기억되는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의 묘소입니다. 숲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니, 그곳에 살았던 이들의 믿음을 만나는 일도 순례의 한 부분임을 느낍니다.
현장 안내판은 할머니를 ‘풍수원성당의 의인’으로 소개합니다. 1891년에 태어나 1971년 6월 24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아와 장애가 있는 이웃,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의 곁을 지킨 분입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커다란 업적보다 매일의 작은 수고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한 끼의 밥을 마련하고, 아픈 사람의 몸을 돌보고, 누군가의 마지막 밤을 함께 지키는 일. 풍수원에 남은 할머니의 자취는 그런 하루들이 쌓인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고난 끝에 찾은 풍수원, 나눔이 시작되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풍수원 정착
현장 안내판에 따르면 조이분 할머니는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아홉 살에 민며느리로 보내졌습니다. 시집에서 겪은 학대와 구타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고관절을 다쳐 걷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이었습니다. 시집에서 쫓겨난 뒤 여러 곳을 떠돌던 할머니는 마침내 풍수원에 닿았습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할머니에게 이 산골 마을은 다시 살아갈 자리를 찾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안나의 집’ 문간채에서 시작한 공동생활
남의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거들며 지내던 할머니에게 정규하 신부가 거처와 쌀을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안내판에는 그 거처가 ‘안나의 집’ 문간채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에게 생긴 작은 여유를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고아와 장애가 있는 이웃 등 일곱 명을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산나물을 뜯고 땔감을 손수 마련하며 공동생활을 꾸렸습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돕는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넉넉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가진 것으로 다른 이의 자리를 마련해 준 삶이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본 평생의 손길
할머니의 돌봄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안내판은 1910년 이후에도 고아 네 명을 돌보고, 거동이 어렵거나 중증 치매를 앓던 두 할머니의 식사와 배변을 도왔다고 전합니다.
자신도 몸이 불편한 가운데 다른 이의 하루를 책임지는 일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밥을 짓고, 몸을 씻기고, 밤중에 누군가의 부름에 응하는 일은 매일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기록 속 짧은 문장 뒤에는 우리가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살림이 어려운 집의 아이들을 돌봐 부모들이 농사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동네 노인이 임종할 때면 여러 날 밤을 새우며 유족 곁을 지켰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생각하며 사랑이라는 말의 무게를 돌아보았습니다. 조이분 할머니에게 사랑은 누군가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함께 견디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6·25전쟁 때 지켜낸 성물과 십자가 유물
조이분 할머니의 이야기는 6·25전쟁의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현장 안내판에는 할머니가 피란하지 않고 성당의 성물을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 지켜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삶의 터전조차 안전하지 않았던 때, 할머니는 공동체의 신앙이 담긴 물건들을 보존했습니다. 그 손길 덕분에 이어질 수 있었던 기억을 생각하면, 오래된 성물은 단순히 낡은 물건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함께 올린 십자가 사진은 조이분 할머니가 전쟁 때 목숨을 걸고 지켜낸 유물이라고 전해 들은 사진입니다. 다만 안내판 사진에는 개별 유물의 목록이 나오지 않아, 전시된 십자가 각각의 보존 이력을 모두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유리 너머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저는 그날의 항아리를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기도했던 시간, 두려움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믿음이 그 안에 담겼을 것만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지킨 것은 물건과 더불어 공동체가 기억할 신앙의 흔적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티파니의 묵상: 내 손에 들린 것을 돌아보며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는 1971년 6월 2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장 안내판은 할머니의 묘가 풍수원성당 뒤편 십자가의 길에 모셔져 있다고 전합니다.
그 삶을 생각하며 묘소 앞에 조용히 머물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깊은 상처를 겪고도 다른 이의 아픔에 손을 내민 사람. 할머니가 겪은 폭력을 어떤 말로도 가볍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후의 삶에서 보여준 돌봄은 제 마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할머니의 소박한 봉분 위에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습니다. 만약 앞에 계셨다면 손잡아 주시며 조용히 안아 주셨을 것 같은 포근함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많이 미안합니다.
상처 입고 가진 것 없던 빈손으로 수많은 생명을 안아 주었던 할머니. 한 여인의 삶이, 화려한 금빛 교리서보다 더 강렬한 울림으로 가슴을 울립니다. 그리고 오늘 내 손에 들린 것들은 무엇인지도 돌아봅니다.
주님, 저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이 주어져 있음에도 왜 그리 작은 불평과 원망을 안고 살아가는지요.
마태오 복음 25장 40절의 말씀도 떠오릅니다. 가장 작은 이에게 베푼 사랑을 당신께 베푼 것으로 받아들이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할머니의 생애는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되새기게 합니다.
풍수원성당을 방문하시는 순례자 여러분, 붉은 성전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뒤에는 꼭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보다 부유했을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가 여러분의 지친 발걸음에 따뜻한 위로와 가르침을 전해줄 것입니다.
풍수원성당과 조이분 할머니 묘소 순례 안내
| 순례지 | 풍수원성당과 성당 뒤편 십자가의 길 |
|---|---|
| 성당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
| 성당 문의 | 033-342-0035 |
| 묘소 위치 | 현장 안내판 기준, 성당 뒤편 십자가의 길. 정확한 동선은 현장에서 안내받으세요. |
| 함께 둘러볼 곳 | 성당, 십자가의 길, 풍수원유물전시관 |
| 방문 전 확인 | 미사 시간과 전시 공간 운영 여부는 방문 전에 확인하세요. 전시관은 성당과 별도 주소·운영 일정으로 안내될 수 있습니다. |
성당에서 기도하거나 미사에 참례하는 분들을 배려해 조용히 이동해 주세요. 숲길에서는 편한 신발을 신고, 비가 온 뒤에는 미끄러운 구간을 살피며 걸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풍수원의 계절 풍경과 기도 중에 마음에 남은 생각들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의 순례에서 오래 기억에 남은 사람이나 장소도 댓글로 들려주세요.
참고 자료와 사진 안내
- 현장 안내판 「풍수원성당의 의인, 조이분 마리아 할머니」: 생애, 이웃 돌봄, 전쟁 중 성물 보존, 임종일과 묘소 위치. 이 글에 첨부한 사진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 풍수원: 성당 주소.
- 한국관광공사 — 풍수원성당: 주소와 대표 문의 전화.
- 한국관광공사 — 풍수원유물전시관: 전시관 소개. 운영 정보는 방문 전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사진은 티파니 측 제공 순례 사진입니다. 성물 보존에 관한 일반 기록과 사진 속 개별 십자가의 이력은 구분해 기술했습니다. 생애에 관한 설명과 순례자의 개인 묵상도 구분했습니다.

핑백: 풍수원성당을 찾아서 ③ - 티파니의 성지순례